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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과 한옥집

by -한우물 2008. 5. 9.

학창시절, 돈암동 언덕배기를 지나갈 때면 그 옛날 세도가 사대부집이었을 법한 먹기와집이 있었다. 참으로 멋있고 고풍스럽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한옥은 온돌방과 마루를 균형있게 결합하여 이 땅 한반도의 추위와 더위를 해결하도록 지방에 따라 독특한 주거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대가족제도에 맞게 남녀와 장유, 주종관계에 따라 공간 배치 또한 적절한 구조를 알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사용했고,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행랑채는 머슴들이, 중문간 행랑채는 청지기가 거처했다.

지위 높은 벼슬아치 양반들은 장식적인 면에도 치중했겠지만 서민들은 기능성을 높이도록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했다. 기둥과 서까래·문·대청바닥 등은 나무를 썼고, 벽은 짚과 흙을 섞은 흙벽으로 만들었으며, 창에는 한지를 발랐다. 방바닥은 구들장 위에 한지를 깐 뒤 콩기름 등을 발라 윤기를 내어 방수•방습의 기능도 뛰어났다.

이런 한옥들이 이젠 ‘개발’에 밀려서 대도시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유산이기에 서울시는 남산에 한옥마을을 지정하여 한양의 팔대가중 하나였던 박영효를 비롯해 일반 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전통보존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옥도 이렇게 보존하는데 대한민국 영상홍보자료에도 등장하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지난 10일 어이없이 600년 역사를 뒤로하고 소실되고 말았다.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할 문화유산, 당연히 국가에서 잘 관리하고 보호하리라고 생각했기에 이번 화마로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해외로 밀반출되고, 약탈당한 문화제를 찾기 위하여 방송국에서는 기획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내반입을 노력했는데 국가는 예산을 핑계로 존재하는 문화재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대 기술로 숭례문 복원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 민족의 지혜와 영혼이 담긴 건축물로서의 진정한 역사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전국의 문화재와 건축물의 양식이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화재와 같은 재앙에 조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 화재가 남긴 역사의 교훈을 새겨야할 것이다.

 

김상순의 생활의 발견 칼럼에 게제된 글 노원신문[4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