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퐁당퐁 변소를 아시나요?

by -한우물 2008. 6. 29.

퐁당퐁 변소

빌딩과 아파트로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길거리나 골목에서는 공중화장실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빌딩의 상가에서 화장실을 개방해 대중이용공중화장실이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등에서만 찾을 수 있고, 파고다공원 옆에서 공중화장실을  볼 수 있다.

변소 혹은 측간으로 불리던 말이 언제부터인가 화장실로 불리어졌고, 스님들이 절에서 사용하던 ‘해우소’란 말도 이제는 보편화되어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한 언어로 통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구조에서 변소는 집안 대문 옆 한켠에 독립적으로 있었던 것이 보편적이다.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남녀가 엄격하게 구분되던 우리의 풍습 속에서도 변소만큼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처럼 남녀가 같이할 수 없는 일상에서 같은 공간을 활용하는 변소에 대한 어르신의 너그러움은 이 장소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급하면 남녀의 구별없이 이용하던 경험은 변소이용의 관대함이다. 세월이 변하다보니 지금은 잘못이용하면 변태로 몰려서 오해를 살수도 있는 환경이다.

어린 시절에 변소에 대한 기억은 밤이면 귀신이 나온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때문에 무서운 공간이었다. 오밤중에 꼭 큰일을 보려면 만만한 동생을 깨워서 문 앞에 보초를 세우고 말을 시키면서 변소를 다녀오곤 했다.

예전에는 푸세식이라 오물을 치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신 분들도 계셨다. 기다란 막대기에 알철모를 달아서 오물을 퍼다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거나 버렸다. 작은 텃밭에 인분 거름으로 키운 무나 배추는 색상도 아주 파랗고 맛도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모든 농사일이 사람의 손과 땀으로 자식 다루듯이 애지중지 하시며 농사를 지으셔서 그런지 그 맛은 최고였다. 지금은 인분거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여 예전의 그맛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퐁당퐁 변소의 기억은 특별하여 노력과 생각을 결합하여 큰일을 보았다. 미군들이 사용하다 버린 커다란 드럼통을 윗부분을  깡통 따듯이 개봉 후 땅을 파 묻고는 널찍한 판데기를 두 개 걸쳐 놓았다. 남자가 소변을 보는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큰일을 해결하려면 오물양이 많아 잘못하면 오물이 튈까봐 엉덩이를 살짝 살짝 들어가면서 큰일을 보았다.

우연히 15년전 의정부 축석고개 검문소 옆길로 차를 몰고 서울로 오던 중 길 한켠에 화장실이 눈에 들어와 급해서 얼른 뛰어가서 일을 보는데 퐁당퐁 화장실이 아닌가? 시원스레 일을 보았는데 여자 분들은 다녀와서 이구동성으로 아직도 이런 화장실이 있네 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점차 사라져가는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세월의 변화는 빠르게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어서 지금은 휴대용 화장실이 등장하여 캠핑용으로 좌변기 화장실을 축소시킨것 같은 화장실이 나와서 펌프같은 것이 작동하여 맑은 물이 고이고 오물은 하단 오물통으로 버려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일들이 어제일 같은데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 건 나도 그만큼 변화하는 문명의 이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노원신문 김상순의 생활의 발견 [4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