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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추억속의 빨간 우체통

by -한우물 2008. 7. 22.

추억속의 빨간 우체통

(김상순의 생활의 발견)

 

세월이 흘러가면서 세상변화도 당연한 이치지만 너무 빠르게 변해서 나이를 더하면서도 나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우연히 눈을 돌려 수락산으로 오르는 초입의 아파트상가 앞에서 빨간 우체통 하나가 서있는걸 보면서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 빨간 우체통
내가 편지를 쓴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아물거리는 것을 보면 옛일인건만은 분명하다. 학창시절에는 펜글씨를 배우면서 글씨체를 수정해야 했었고, 얼마나 글씨를 잘 쓰는지는 깔끔하게 공책 정리를 하였던 친구가 점수도 후하게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글씨를 잘 쓰는 친구가 부럽고 선망에 대상이 되어 은근히 질투심을 느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보니 웃음만 나오는 건 추억이기에 그런가보다. 그 시절에는 우표 수집이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음은 그만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지금은 집으로 오는 우편물의 대부분은 공과금 고지서나 쇼핑몰 등에서 보내는 것들이고, 지인들로부터 편지를 쓰거나 받아본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현실에서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 있었던 빨간 우체통이 겹겹이 쌓여 있었던 추억을 꺼내 보게 하였다.

내가 편지를 가장 많이 썼었던 시절은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때였다.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애인에게 사랑을 구해 편지에 써 보냈다. 그 답장을 받는데 평균 일주일 정도를 기다려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애인에게 편지가 오늘 도착할까 내일 도착할지 애간장을 태우면서 기다리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 날이었는지 모른다. 손꼽아 기다리며 안부를 물어보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서 보내주면 편지에 희•노•애•락이 묻어나 있던 시절이었다.

통신 수단의 발달은 그 당시에도 전화가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가정집에 그리 흔하게 있었던 생활용품이 아니었다. 전화를 이용하는 통신료가 비싸서 급한 일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았다. 백색전화 청색전화로 구분되어 백색은 개인 전화로 설치비가 비쌌으며, 청색은 임대형식의 그 당시 전화국에서 임대하여 쓰던 시절이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편지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편지를 쓰면서 애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미사어를 사용하여 나의 분위기를 연출시키거나 즐겨 읽었던 시(時)를 적어서 환심을 사려고 애썼던 기억이 생각난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누구나 가지고 다니며 없는 사람이 귀할 정도다. 관공서조차도 휴대폰번호를 기재하는 현실이며,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어서 굳이 전달할 내용을 편지에 쓰는 것에서 멀어지는 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새해 인사를 알리는 연하장마저도 인쇄되어있는 고정된 문구와 받는 사람 주소나 이름조차도 스티커로 인쇄하여 붙여 보내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예전의 것들이 구시대적이라 불편이 한 두가지 아니었지만 당연히 받아들이고 살았기에 불편하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편지가 구시대의 유물로 변해 가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며 빨간 우체통이 추억 속으로 묻히지 않기를 마음으로 기원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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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 4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