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같은 사람
지금은 전기요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집안에도 환하게 전기불을 켜놓고서 생활한다. 특히 아이들의 방에는 눈이 나빠진다고 대낮같이 밝힌다. 어렸을 때 한낮에 불을 켜두었다가 부모님에게 혼났던 기억도 새롭게 떠오른다. 전력수급 사정이 아주 열악해서 계절별로 시간을 정해서 제한 송전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우리 가정사에서는 절약은 생계비용과 직결되었다. 무엇이든 무조건 아끼지 않으면 안 되었고, 특히 전기는 아끼기도 쉬었다. 전등을 안 켜면 되었으니까. 전기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으나 중요함은 예전같이 느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전력이 가정에 공급되기에 불편함을 모르고 사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백열전구를 사용하다가 전기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점차적으로 형광등으로 바뀌었다. 형광등은 ‘초우크 다마’가 먼저 번쩍 번쩍거리면서 순간적으로 높은 전압을 흘려주면 뒤늦게서야 형광등에 불이 켜진다. 일정한 전압이 유지되지 않으면 형광등이 꺼져 안정기도 달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형광등은 알전구에 비해 비싼 전등이었다. 형광등도 세월이 변하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절전형으로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한전에서 가정용으로 100볼트의 전압으로 송전했다. 그래서 가정의 모든 전열기구는 100볼트로 조정되어 나왔다. 나중에 220볼트로 송전전압을 높이면서 집에서는 ‘도란스’를 사용했다. 100볼트로 내려서 사용해야만 그동안 쓰던 TV나 라디오, 전기밥솥을 사용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가전제품은 220볼트로 상용화되어 일반적인 상품이 되었다.
흐릿하게 불이 켜지던 시절에는 혹시라도 불이 나갈까 봐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전력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댐을 막고 수력발전소를 건설한 것이 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린다. 소양댐은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사업과 4대강유역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의 수자원을 다목적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팔당수력발전소는 소양강댐의 수력발전소와 같은 시기인 1973년도에 준공되어 자원이 부족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세계적인 오일 파동을 겪으면서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아끼고 절약해야만 사는 길이라는 어르신의 말씀이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풍요로울 때 아끼는 방법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치 없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형광등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여 말하던 세대들의 절약정신이 그리운 추억되어 지나간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노원신문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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