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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민족의 대이동 설날

by -한우물 2009. 1. 22.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기준으로 1월1일을 한해의 첫날로 삼아 ‘설’이라고 쇠었다. 1896년 대한제국 때 양력을 받아들이게 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민족의 전통민속을 없애기 위하여 설날을 양력으로 옮기도록 강제했다. 독립한 후에도 정부가 ‘이중과세’가 생산력을 떨어뜨린다며 양력 설의 연휴기간을 3일로 정하고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설날에는 차례도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 고유의 음력설인 ‘설날’은 어쩔 수 없이 하루를 공휴일을 정하면서 설날이 구정과 신정, 2개가 존재하게 되었다.

85년에서야 우리 고유의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면서 차차 자리를 잡아 3일간의 연휴가 되고, 양력설이 오히려 하루로 공휴일이 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전통이 맥일 잇게 되었다.

설날은 지난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연휴가 길어진 설날에는 멀리 타향으로 나와 살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발길을 돌려 식구들이 모이고, 웃어른께 한해의 건강을 빌려 인사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1천만 서울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귀향하는 사태가 ‘설날 민족 대이동’으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차나 고속으로 가는 열차인 KTX를 미리 예약하면 조금 편하고, 고속버스나 자가용으로 고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하는 차량의 행렬로 진풍경을 연출한다.

손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선물을 가득 들고서 입가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상봉에 미소가 입가에 가득 담긴다. 어른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설빔으로 곱게 차려입는다.  예전에는 복조리장수가 설날 전날 밤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동네를 돌아다니었다. 집에서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는데,  못사신 분들은 아침 일찍 복조리를 사셨다. 지금은 조리를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 생활에 가장 필요했다. 새해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복을 얻는다는 뜻에서 생활풍속이 생겼다고 생각된다.

설날 밤 귀신이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어서 어릴 적 신발을 방안에 감추거나 뒤집어 놓고 잠을 자던 생각이 떠오른다.  채를 걸어두면 귀신이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새벽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쥐불놀이할 때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다보면 나이론 바지가 눌어붙어서 딱딱해진 바지를 어른들에게 혼날까봐 밤늦게 들어가 몰래 숨겨 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의 도시아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때 만해도 윷놀이, 널뛰기, 연 날리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쥐불놀이로 하루를 재미있게 보냈다.

 

 

 
노원신문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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