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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구공탄난로

by -한우물 2009. 1. 21.

 

        

   구공탄난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어 아련한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연탄보일러가 다시 등장한다고 한다.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일반가정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에 비해 경비가 4분의1인 연탄보일러로 교체하여 설치한다고 한다.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연탄보일러는 80년대에는 230만 가정이 연탄을 애용하였으나 지금은 급격히 줄어들어 20만이 연탄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연탄의 보급이 많은 곳은 화훼단지에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위하여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따스한 겨울을 날 수 있어서 폭발적으로 서민의 사랑을 받았던 연탄이 도시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일부에서는 조금씩 늘어난다.

예전에 이사를 가려면 제일 먼저 이사갈 집으로 가는 것이 연탄불이 꺼지지 않은 불타는 연탄이었다. 어르신들이 연탄불을 제일 먼저 가져갔던 이유가 제복이 불같이 일어나서 잘살라고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탄은 화력이 강하여 오래 타고 가격이 저렴하여 일반적인 가정의 사랑받는 난방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연탄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식당, 학교, 사무실이나 예전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다방 등에서 난방 연료로 썼다. 추운 겨울철 다방에서는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난로에 커다란 주전자에서 뽀얀 김이 하늘로 올라가 난방은 물론 손님에게 겨울철 따뜻한 보리차를 제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학교에 가면 연탄난로에 점심시간 전 도시락을 따뜻하게 하려고 탑을 쌓듯이 높게 올려두면 제일 밑에 있는 도시락은 검게 타기도 했다.

주택이 현대화되지 못했던 시절은 심심치 않게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라디오나 신문의 뉴스거리였다. 지금은 부엌을 주방이라 하여 씽크대에서 모든 조리가 이루어지지만 예전에는 연탄을 사용할 수 있는 부뚜막이 있었다. 전통 한옥의 온돌 구조는 돌판을 깔아서 데우는 구조로 장작을 사용하여 불을 지피던 전통방식과는 다르지만 취사를 가능하게 하도록 부뚜막이 있었다. 연탄을 갈기 위해서 연탄집게와 연탄을 덮어두던 두꺼비집이라는 것이 가정에 필수품으로 어느 집이나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월동준비로 김장을 하고 연탄 창고에 연탄을 가득 채우고 나면 부자 부럽지 않았다. 항상 연탄불을 살피는 것은 어머니가 당번이었는데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불을 갈아야만 따뜻하게 가족이 추운 겨울을 이길 수 있었다. 연탄이 붙어서 잘 안 떨어지면 어머니는 부엌칼을 사용되기도 했다. 연탄불이 꺼지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구공탄 모양으로 생긴 번개탄이 나오면서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연탄이라는 말보다 나에게 친숙했던 말은 구공탄이었다. 구공탄, 십이공탄 십구공탄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연탄구멍의 숫자대로 불려지면서 연탄의 이름을 대신했다. 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장작을 만들어 때던 시절 우리나라 산림녹화에 연탄이 크게 기여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연탄을 사용하는 곳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연탄의 전성기를 추억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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