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원신문기사내용

겨울밤의 군고구마

by -한우물 2009. 2. 3.

겨울밤의 군고구마 

아주 오래전 유년기 시절의 겨울철에 군고구마가 맛있는 군것질거리로 아련하게 추억된다. 강원도하면 감자바위라고 하여 감자만 많이 나는 줄 아는 분들이 많겠지만 옥수수와 고구마도 겨울양식으로 저장하여 간식으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하얀 눈이 내려 대지를 뒤덮으면 구불구불한 시골길만 어렴풋이 드러나 철부지에게는 마땅한 놀이도 없는 우울한 계절이 되었지만 부엌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남은 불에 어머니가 고구마 두어개 넣어 두셨고, 아랫방에서는 할머니께서 화톳불에 고구마 몇개 묻어두시는 손주의 심통을 달래주셨다. 

아무리 방문을 꼭꼭 닫아도 방안 가득히 채운 고소한 고구마 익는 냄새가 문틈을 비집고 밖으로 퍼지기 마련이다. 그 냄새는 손자를 부르는 신호였다.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설익은 고구마를 먹으려고 하면 할머니는 조금 기다리라고 작은 내 손길을 막는다. 불과 몇분 만 기다리면 고구마를 먹을 수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왜 그리도 지루하게 느껴지었는지 모른다. 사실 동생이나 누나들보다 조금이라도 큰 고구마를 먹으려고 경쟁하듯이 먼저 집어든 것이다.

알맞게 익을 쯤이면 할머니는 얼른 한 개를 집어서 방바닥 누런 갱지 위에 놓고서 장손인 나에게 제일먼저 고구마를 주신다. 누가 뺏어 먹을 것도 아닌데 마음만 급한 나머지 검게 탄 뜨거운 고구마를 잡고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이손저손으로 옮기면서 숯검뎅이를 뭍혔다. 이때만 하여도 장남 혹은 아들에게 모든 것이 우선권이 부여되던 시절이라 나는 주전부리 쟁탈전에서도 단단히 특혜를 누린 것이었다.

들놀이도 별다른 것이 없어서 개울이 얼음판이 되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가지고나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추위를 이기려고 한쪽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워놓으면 누군가가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집어넣는다. 익어갈 즈음 주인아이가 먼저 한 개를 선택하고 나면, 서로 달려들어 한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설익은 고구마를 꺼내들고 달음질치고, 우루루 쫒아가서 여럿이 모여 한입씩 나누었다. 입가에는 까맣게 흔적을 남기고 말이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 국민학교 때에는 하얀 눈이 거리에 소담스럽게 내리면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군밤, 붕어빵 아저씨 풍경이 펼쳐진다. 시린 담벼락 사이를 부딪치는 바람으로 길거리 불빛마저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에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서민들의 정겨운 거리풍경이다. 길모퉁이 눈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연탄불을 지피고 그 위에 석쇠를 놓고서 고구마를 올려놓고 구워서 파시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발전하여 커다란 드럼통에다가 둥그런 모양의 서랍장을 안으로 만들고, 그 속에 고구마를 넣어 나무로 불을 지펴서 군고구마를 구워 판다. 흔하지는 않지만 지하철역 입구에서 더러 만날 수 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양식은 아니지만 모락모락 김을 후후 불어 가면서 길거리에서  맛있게 먹는 군고구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겨울이다.  

노원신문 445

노원신문 김상순의 생활의발견

'노원신문기사내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화 솜이불과 솜틀집   (0) 2009.02.21
얼음판에서 신나게 즐기던 팽이치기   (0) 2009.02.05
민족의 대이동 설날  (0) 2009.01.22
구공탄난로  (0) 2009.01.21
형광등 같은 사람   (0) 2009.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