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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흑백사진

by -한우물 2008. 8. 30.

 흑백사진

 

 

상계동 고갯마루 한정식 집에서 찍어온 사진 입니다 

 

어느 날 문득 오래된 빛바랜 앨범을 들추어 보면서 세월이 이리 빨리 흘러갔는지 상념에 잠긴다. 누렇게 탈색된 사진과 지난날의 추억들이 온통 방안에 깔린다.

수많은 사연이 담긴 사진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35년전 사진사가 찍어준 가족사진에는 배경은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서 찍었는데 한쪽 옆으로 스레이트 지붕이 삐쭉 보이는걸 보면서 어려웠던 그 시절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 당시 결혼사진이 없는 집들이 많았는데 사진사가 동네를 돌면서 작은 증명사진을 받아다가 남의 결혼사진에 얼굴만 바꾸어서 새 사진을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사진이 아니기에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 시절에는 최고의 기쁨으로 동네 아저씨가 자랑하던 기억이 살아난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사시던 분들이 소수이었고, 대다수의 분들은 혼인신고만 하고서 그냥 사셨던 것 같다.

사진사 아저씨는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이리 고개를 돌려라, 턱을 내리라는 등 주문도 많았는데 그렇게 찍어진 사진은 정말로 잘 나왔다.

지금은 갈 곳도 많지만 예전에는 창경원이나 남산에 케이블카 타는 게 가장 큰 외출이자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할머니 손을 잡고서 창경원에서 동물도 구경하고 놀이기구도 타면서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곳에는 사진사 아저씨가 목에 사진 샘플을 걸고서 사진을 찍으라고 돌아다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촌티가 줄줄 흐르는 사진인데도 지금 보아도 너무 그립고 정감어린 시절이었다.

수동식 필름카메라는 초점을 잘 맞추어서 흔들림이 없이 찍어야  필름도 버리지 않고 한 장이라도 더 찍을 수 있었다. 필름 값이 너무 비싸서 함부로 찍을 수 없었고, 인화료도 많이 나오니  타격이 커서 마구 찍을 수 없었다. 얼마 전 뉴스를 접하니 필름 만드는 공장이 부도나서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구형 수동식 카메라는 고가였기에 그나마 잘사는 집에서나 가지고 있고 웬만한 가정에서는 사진사 아저씨에게 찍었던 사진이 앨범의 내용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시장도 급변하여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고  필름값이 들어가지 않아서 용량이 허용되는 데로 무한정 찍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잘못 찍은 사진은 삭제시키고 어둡게 찍힌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하여 얼굴에 있는 점도 지우고 이쁘게 수정을 하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래서 ‘사진빨에 속지 말자’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진으로는 누구나 조작이 가능해서 그 사람 외모를 평가할수 없게 되었다.  예전 사진은 있는 그 대로를 보여주었다면 지금은 여성이 예쁘게 화장을 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연출하듯 디지털 카메라로 수정 보완하기에 실물과 다른 사람으로 오판한다는 우스운 이야기까지 떠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변화는 칼라사진 조차도 흑백사진 분위기를 연출하니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걸 실감한다.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 

 

노원신문 4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