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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흑백 텔레비전과 전파사

by -한우물 2008. 12. 5.

생활의 발견

흑백 텔레비전과 전파사

컬러 텔레비전이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80년대로 기억된다.

흑백텔레비전도 집집마다 있었던 시절이 아니어서 70년대에는 만화방에서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했었다.

어린 소년의 기억은 1969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이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천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딛는 감동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람이 달나라를 간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리라는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세계 최초로 아폴로 11호가 달나라 착륙 장면도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보면서 달나라에는 토끼가 사는 줄 알았던 소년은 디지털 문명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이 우주공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컬러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면서 세월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70년대에는 마을마다 전파사가 있어서 당시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수리해주었다. 전파사 앞에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울려 퍼져 그곳이 전파사라는 것을 직감으로도 느낄 수 있던 시절이다.

아버지의 라디오가 고장이라도 나면 나는 조그마한 라디오를 들고서 전파상으로 달려가 고치는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전파사에 가면 본체가 분해된 텔레비전의 속 내부를 볼 수 있는 것도 큰 구경거리였다. 내부에는 유리로 만든 진공관에, 알록달록 색깔을 입힌 크고 작은 트랜지스터가 빼곡하게 꼽혀있다. 전파사 아저씨가 수리하는 것을 보면 모양도 비슷한 것들을 신기하리만치 제자리에 척척 끼워 맞추고 이곳저곳을 만지면 금방 텔레비전도 소생한다. 뭔지 알 수 없는 부속을 끼우거나 납땜으로 고치면 먹통이던 라디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내가 고친 것도 아닌데도 뿌듯한 마음으로 신이 났었던 이유는 라디오가 소생했다는 뿌듯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수고했다고 커다란 십리사탕을 하나 사주면 입안 가득히 담겨진 사탕을 빨면서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땅한 놀이도 없던 때라 다른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돌파구가 흑백텔레비전이나 라디오였다. 흑백이라 색상의 구분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연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던 시절이다.

광고시장도 지금은 다양한 광고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한정된 제품만이 광고에 등장했었다. 지금도 생산되는 제품 가운데에는 텔레비전광고는 병으로 된 우유, 치약, 라면, 조미료 등이 주된 광고였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줄줄이 사탕’이라 하여 여러 개 사탕이 붙어있었고 CM송도 따라 부르기 쉬워서 동요처럼 따라 불렀었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우리들은 000 줄줄이 사탕’ 이란  CM송은 대중적인 어린이의 흥얼거리는 노래 같았다.

디지털이란 전자문화가 발달될수록 나이든 어르신들은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도 깨우치기 힘들지만 과거의 추억이 더욱 그리워 이야기 하는 일은 어려운 시절의 그리움이 지금의 윤택함의 현실에 기분 좋은 반응이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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