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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여름날의 시원한 세례! 등목

by -한우물 2008. 12. 2.

김상순의 생활의 발견 

여름날의 시원한 세례! 등목

뜨거운 태양 아래 무더운 여름이지만 어린아이들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하루를 땀으로 적신다. 여름방학이라도 집안에서는 놀 것이 없어 골목에 모여 때로 몰려다니면서 술래잡기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재미없을 법한 딱지치기나 땅따먹기, 술래잡기 등 한정된 놀이문화만 존재하던 그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오뉴월 햇살이 뜨거워야 알곡이 잘 영글어 곡식이 잘 된다고 어르신은 무더운 여름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위는 참을 수 있지만 농작물이 잘못되어서 수확이 적으면 생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던 농사가 주된 우리의 산업이었기에 그리 하셨던 것이다.

어른들은 햇살을 가리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논밭이며, 동네를 다니셨다. 밀짚모자에는 멋을 더하기 위하여 영화에 사용되었던 필름을 테두리에 둘러서 장식했다. 한가한 날이면 부채를 부치면서 툇마루에 않아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드라마에 심취하셨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정자에서 어르신들은 옹기종기모여서 무더운 여름 피서를 나름대로 즐기시면서 올가을의 풍작을 마음속으로 빌면서 여름을 나시었다.

한낮의 정감어린 어르신의 풍경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동네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동네 어르신은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우리에게 더위 먹는다며 그만 뛰어다니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시기도 했다.

어스름 해질녘 집으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등목 먼저 하고 밥 먹자고 하신다. 나는 웃옷을 벗어 던지다시피 걸쳐두고 펌프가 있는 우물가로 달려간다. 허리를 구부려 땅을 보고 엎드리면 바가지로 등에다 물을 끼얹어주셨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아 차가!’를 연발하면서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원한 한기가 온몸을 식혀준다.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는 여름에는 차고 겨울이면 따뜻하다. 바지가 젖지 않도록 조심조심 온 몸을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는 어느 집이나 애나 어른이나 등목을 했다. 위생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더위를 식혀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등목은 꼭 했다. 지금은 선풍기나 에어컨으로 더위를 식혀 주겠지만 선풍기도 귀했고 부채로 더위를 식히는 게 일반적인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목욕탕도 쉽게 찾아가고, 즐기는 장소가 아니었다. 목욕비가 비싸서 평시에 이용하기 힘들었고, 명절날이나 집안에 대소사나 있어야 목욕을 했으니 등목이 여름 최고의 시원함이었다.

등에 찬물을 끼얹고 시원한 마루에 올라가 저녁 밥상을 받으면 시원한 김치 국물에 밥을 비벼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어머니가 특별히 준비한 얼음 동 동 띄운 수박화채를 온 가족이 한 사발씩 돌리며 배속까지 시원하고 달콤함이 그득하면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

지금은 처서가 지나니 밤낮의 일교차가 커서 감기라도 걸릴까봐 시원한 등물이 조심스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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