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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얼음판에서 신나게 즐기던 팽이치기

by -한우물 2009. 2. 5.

 

 

얼음판에서 신나게 즐기던 팽이치기


70년대에는 도시나 시골이나 별다른 차이도 없었고, 교육열에 의한 8학군 이야기도 없던 시절이다.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아이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르신들 입을 통하여 들을 수 있었다. 70년대는 빈부의 차이라고 해봐야 따뜻한 이밥 즉 쌀밥을 먹는 아이와 보리밥을 먹는 아이의 차이일 것이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아이는 극히 보기 드물었고, 대부분 책보자기를 싸가지고 다니는 정도의 차이 뿐이었다.

겨울이면 눈이 오지 않아도 들판을 휘젓고 지나가는 찬바람이 어찌 그리 추웠는지 모른다. 세수를 하고 들어가다 쇠로 된 방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자석처럼 쩍쩍 달라붙는 추위라서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일기예보에서 눈 내리고 찬바람 분다고 하면 겨울 깊숙이 들어 왔다는 생각뿐이었다.

개울물이나 논바닥이 얼어붙으면 한명 두명 모이면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팽이치기를 했다. 팽이는 아버지가 굵직한 나무를 톱으로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밑 부분은 사선으로 둥근 모양으로 깍고, 아래에는 쇠구슬이나 나무못을 박았다. 그 당시에는 쇠구슬도 흔하지 않아서 제일 흔했던 나무못을 아래에 박아서 주었다. 나무는 단단하기로 유명한 박달나무나 구하기 제일 쉬운 소나무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팽이를 돌리기 위해서는 팽이채가 필수 이었는데 40cm 정도의 싸리나무 등에 노끈이나 닥나무 껍질을 묶어서 만들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채에 감긴 팽이를 빙그르 돌린 후 얼른 채로 팽이 몸체를 두들겨서 살리고 나면 치지 않고서도 오래 돌아가는 팽이가 이기는 게임이다. 기술을 요하기도 하지만 구슬을 박은 팽이가 보편적으로 오래 돌아간다. 그래서 못을 박은 아이들은 돌아가는 팽이를 상대편 팽이에 맞부딛쳐서 살아남는 게임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팽이를 잘못 만들면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흔들흔들거리면서 오래 돌지도 않고 열심히 쳐서  살려도 잘 돌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랫배의 사선이 대칭이 되도록 균형이 잡혀야 하는데 그래서 아버지께서 꼼꼼하게 잘 만들어 주어야 아이들과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놀이에서 지고나면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때마다 정성을 들여 부딛쳐도 잘 쓰러지지 않도록 조금 더 크게 만들어 주셨다. 다음날 얼음판에 가면 다 이길 것 같은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속담풀이에서 ‘때릴수록 오래 사는 게 뭐게?’ 하면 팽이라고 서슴지 않고 이야기했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의 놀이문화는 돈이 안들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협동심을 요하는 놀이가 대부분이어서 같이하는 놀이문화로 어울림의 한마당이 되었다.

노원신문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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