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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복조리 사세요, 복조리!

by -한우물 2009. 3. 9.

 

 

복조리 사세요, 복조리!

조리는 싸리가지 속대나 대나무 껍질을 물에 불려서 껍질을 얇고 가늘게 손질하여 일일이 손으로 역어서 만들어 쌀을 이는 도구로 생활필수품이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조리의 기능을 상실한 지가 25년은 넘은 것 같다. 70년대 말까지는 가정에서 조리를 구경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공예품 조리는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조리가 등장하기도 했었다. 조리도 생산성을 갖춘 현대화를 맞기도 했다.

봄부터 88번의 농부의 손을 타고 잘 여문 벼는 논에서 바로 탈곡한다. 나락은 가을햇살에 잘 말려야 오래 보관할 수 있는데, 잘 마를수록 상품으로 쳤다. 마당이고 신작로고 멍석을 깔고 거기에 나락을 널어 말렸다. 이후 정미소에 가서 잘 찧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쌀로 가마니에 담겨 가정으로 팔려나갔다. 아침 저녁 든든한 배를 채워주는 밥이 그렇게 되었다. 이런 유통과정 중에 돌이나 불순물이 많이 섞여들었다. 집에서 밥을 하현서 돌을 걸러 내는 일이 조리질이다. 정성이 부족한 조리질을 한 밥을 먹다가 돌을 씹으면 뿌드득 소리가 입맛을 버렸다. 심한 경우 치아가 부러지는 경우까지 있어서 오복중 하나인 치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조리질은 필수였다. 

복조리는 섣달 그믐날 자정 이후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사서 가족의 머리맡에 놓아두거나 방안에 걸어 놓고 한해의 무사안녕을 비는 우리의 세시풍속이다.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조리 장수들은 복조리를 가득 들고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복조리를 사라고 외치거나 담장 안으로 던져두고 간다. 어머니는 보통 섣달그믐날이면 복조리를 사시는데 미리 사면 그만큼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믿음에서 그러신 것 같다. 복조리는 쌀을 일듯 복을 담아주고 재앙을 걸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구입했다.

정을 초하루엔 마당에 던져둔 복조리 값을 받기위하여 동네 청년들은 어르신들에게 세배 겸하여 동네를 돌아다녔다. 복조리 값은 깍지도 않았으며 안사겠다고 무르는 법이 없었다. 복을 깍거나 집안에 들어온 복을 찬다는 생각에서 물건의 흥정없이 유일하게 값을 치르던 것이 복조리였다. 그렇다고 동네청년들도 시가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도회지에서도 이러한 풍습은 있어서 새벽에 ‘복조리 사세요! 복조리!’ 큰 소리로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복조리장수를 집으로 불러서 그때 구입하기도 했다.

조리는 지금은 집안의 장식용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2개를 시옷자로 엮어서 색실을 사용하여 예쁘게 꾸미어서 집이나 사업장에 장식용으로 걸어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복조리를 걸어놓고 그 안에 성냥이나 초, 실, 동전 등을 넣어두면 1년 내내 복을 받고 재물이 불어난다는 믿음에서 행해지던 풍습이다.

노원신문 애독자 가정에 기축년 새해에는 복되고 평안한 날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복조리가 가득 채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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