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주발 복 사발
어린 시절에 어르신들이 만나면 인사는 진지 드시었는지 물어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6.25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던 해에 태어나서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라 진지 드셨냐는 인사소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만큼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라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식주(衣食住)라 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식상활을 위해 그릇이 필수적인데, 예전엔 도자기 그릇과 유기그릇이 있었다. 세월이 변하여 그릇의 종류도 다양해져 그 시절과는 다르게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스테인레스 그릇이 대중화되고 깨지기 쉬운 질그릇 대신에 프라스틱 종류가 다양하게 생겨나 그릇 시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민에게 많이 사용되던 것은 가격이 저렴한 도자기인 사기그릇이었고, 조금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는 놋그릇을 사용하였다. 예전에 주발에는 복福자나 목숨壽자가 새겨진 주발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그릇을 보기도 힘들거니와 글자가 새겨진 주발을 더욱이 힘들다.
주발에는 머슴밥이라 하여 그 큰 그릇에 밥을 수복하게 담아서 주었던 것이 우리네 인심이었다. 마땅히 먹을거리도 없거니와 고된 농사일을 위해서는 배가 불러야 힘을 쓸 수 있었다. 멀리 산으로 들로 일하러 나가려면 우선 배가 든든해야 했기에 밥한 주발, 국한 사발을 먹어둬야 했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나면 제일 먼저 아버지밥을 주발에 수북하게 담아 식지 않도록 방안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두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퇴근시간을 맞춰 밥을 지었지만 그래도 늦는 날에는 따끈한 밥을 드시게 했다.
아궁이는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것이기에 겨울엔 집안에 난방을 위하여 구들을 데우는 시간이 어머니가 밥하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금처럼 전기밥솥에 시간에 맞추어 밥을 하는 게 아니어서 밥을 따스하게 보관하는 것에도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겨울철에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뛰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씻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발부터 집어넣고 몸을 녹였다. 그때 생각없이 이불속으로 발을 쑥 밀어넣어 복주발을 엎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혼날까봐 쏟아진 밥을 다시 주발에 담아넣고 모른척 하기도하였다.
아랫목에 모셔진 주발을 언 손으로 문지르며 온기를 느끼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福자 새겨진 그 놋주발이 이제는 거실을 모셔진 귀한 장식품이 되어 있다.
노원신문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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