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불꽃축제! 쥐불놀이
우리나라는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대도시를 빼놓고는 전국이 논밭인 농경사회였다. 오로지 농사가 민족의 밥줄을 책임지던 시절, 새해를 맞이하는 정월 대보름 밤에는 ‘불’로 한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놀이가 있었다. 지금이야 도시가 되어서 마음대로 불을 피울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자칫 인가에 옮겨 붙어 화재라도 난다면 큰일이라 쥐불놀이가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거나 금지시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월 대보름날을 앞둔 날이면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쥐불놀이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했다. 논두렁, 밭두렁에 굴러다니는 빈 깡통을 주워서 기분 내키는 대로 못으로 바람구멍을 뚫었다. 주둥이 양쪽 구멍에는 긴 철사를 매달면 기본적인 장비준비는 끝이 난다. 만들기가 간편하여 조금만 나이들면 아이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놀이였다.
그 다음은 불쏘시개를 마련하느라 형들을 따라서 산에 오른다. 잘 마른 솔방울은 잘 타기도 하지만 타면서도 둥근 모양을 유지해서 요긴하게 쓰인다. 땔감으로 쓸 나무도 주워서 미리 논두렁 밭두렁에 모아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친구들은 논두렁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니며 쥐불놀이를 한다. 나이를 좀 먹은 형들은 긴 막대기 끝에 깡통을 달고 빙빙 돌리며 다니는데, 불꽃은 하늘 위에서 화려한 원을 그리며 장관을 이룬다. 서로 불꽃이 현란하게 보이려고 깡통을 차면 빨간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러다 돌리던 깡통을 놓아버리면 큰 타원을 그리며 불꽃을 날렸다. 여기저기 불똥을 튕겨 불을 냈다. 평상시에는 옴줌 싼다며 말리던 불장난이 이 날만은 허락되었다.
아이들이 들판에서 뛰놀고 있을 때 어른들은 논두렁에 쌓아 둔 짚단에 달이 떠오를 시간에 맞춰 불을 지펴 마을은 환한 대낮처럼 밝게 타올랐다. 경쟁이라도 하듯 논둑마다 불꽃이 하늘 높이 올랐다. 불꽃이 크게 타오르면 농사가 잘된다고 믿고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하는 민속 신앙에 근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쥐불놀이는 일년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한 제의이기도 하고, 애써 지원 곡식을 축내는 쥐나 논두렁 밭두렁에 숨어 지내는 해충을 태워 없애는 과학적인 놀이이기도 했다. 또 타고 남은 재가 거름이 되어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는 지혜가 담겨있다. 비료가 귀한 시절, 집안 아궁이의 재조차도 쌓아 두었다가 거름이 되었으니 자연적인 유기농인 시절이다.
밤늦도록 불장난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불을 끄지 않았다. 너른 들판엔 탈 것이라고는 지푸라기뿐이라 마을로 옮겨 붙을 큰 불이 날 것도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다 나가고, 농사도 기계와 화학비료로 이뤄지니 자연스럽게 쥐불놀이도 사라지는 민속놀이가 될지도 모른다. 늙어가는 장년층의 추억 속의 놀이로 변한 쥐불놀이가 가슴에 남아있다.
노원신문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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