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잉크
2, 3월은 졸업과 상급학교로의 입학식이 열린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교복을 입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설레어 잠을 설치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갈 준비하는 것도 다르고, 배우지 않던 과목을 배운다는 설레임이 컷던 것 같다. 크레용에서 물감으로 바뀌고, 필기구도 연필에서 볼펜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펜글씨 교본이 있어서 글씨 교정을 해주는 부교제가 있었다. 자음과 모음쓰기부터 시작해서 문장연습까지 다양했던 기억이 난다. 글씨를 명조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예쁘게 써내려간 공책은 누가 보더라도 깨끗하여서 은근히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펜은 대부분 문방구에서 나무펜대와 펜촉을 사서 끼워 사용했다. 잉크도 필수적으로 따라 다니었는데 보편적으로 검정 잉크를 사용하였다. 잉크는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뚜껑을 잘못 닫아두었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도 발생하곤 했다. 가방에서 엎질러진 잉크는 교과서나 공책을 까맣게 물들게 하고, 가방에도 시커먼 얼룩을 남겼다.
만년필은 당시에는 최고의 입학선물이었다. 70년 초에는 국산인 파이롯트와 수입품인 파커 만년필이 있었다.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이 사용하는 만년필은 학생 사이에서는 부의 상징처럼 자랑거리였다. 졸업과 입학선물 선물로 파커만년필을 받는 아이는 대단한 호사를 누리는 경우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선물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학용품의 일부만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지금은 학용품들도 흔해 애착심도 없어서 예전처럼 귀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의 말을 빌리면 요즘 청소년들의 글씨체가 ‘개발 새발(원래는 ’괴발개발‘로 고양이와 개의 발)’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형편없는 글씨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악필을 보시면 글씨 좀 잘 쓰라는 퉁박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글씨를 잘 쓰는 아이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난해에 노원구청에서 천상병시인의 유품전시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 가보았다. 앉은뱅이 책상에 생전에 쓰시던 안경과 만년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생전에 손으로 손수 시를 쓰시던 육필 원고가 있었다. 잠시 감상에 젖어 보면서 누구나 펜으로 원고를 쓰던 시절이 오랜 옛날이야기처럼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은 디지털문명의 다양한 콘텐츠를 누리는 세대로 컴퓨터에서 자판을 두드려 글씨를 쓰는 편리한 세상이다. 오자와 탈자까지도 기계가 알아서 다 해주니 손 글씨를 쓰는 일은 드물어서 잘 쓴 필체를 보기가 힘들다. 숙제를 하느라 펜대와 씨름하던 학창시절에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베길 정도로 까맣게 되었다. 그 당시 펜대 굴리는 사람이라 말하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을 지칭하기도 했었다. 컴퓨터 세대들에게는 이해조차 힘든 일이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친숙한 일이었다. 이젠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니 희귀본능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게 된다. 그래도 그 시절,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많다.
노원신문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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