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식 코 닦는 손수건 가슴에 매단 하얀 손수건 3월초 초등학교는 일제히 입학식을 했다. 지금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나아가 기초적인 학습도 이미 사교육에서 마치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던 때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행동하고 배우는 모든 지식을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육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풍경은 커다란 운동장에 모여서 일렬로 키 작은 학생부터 순번이 정해진다. 지금은 학생들의 순번은 키와 상관없이 가나다 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수도 지금은 생각도 못하겠지만 한반의 서울에서는 70명을 넘어섰고, 반수도 남자가 7반까지 있었고 여자아이들은 조금 적은 6개반으로 총13개 반으로 기억된다. 우리반 줄의 맨 앞자리에 서 계신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고, 그러면 교장선생님의 입학 축하의 말씀이 시작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에 기둥이 되라’ 는 훈시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입학식 날 한쪽 가슴에는 학년반이 적힌 명찰을 달고 그 아래에 코 닦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서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조차 힘들지만 70년대에는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어른들의 훈장처럼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서 입학식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다. 그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코를 그리 질질 흘렸는지 모르겠다. 코가 나오면 옷소매로 스윽 닦으니 새까맣게 반질반질해졌고, 엄마는 빨래하는데도 힘들어서 수건을 달아 주었던 것 같다. 지금의 가방에 휴지나 물휴지까지 넣어준다니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 시절엔 고급 손수건은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에는 나일론 재질의 옷이 많아서 코를 닦고 나면 기름칠한 것처럼 유난히도 옷깃은 까맣게 번들번들 거렸다. 나일론 옷은 질기고 바람을 잘 막아 주는 반면에 불에 약해서 추위에 불 가까이 가면 쪼그려 붙어서 옷을 망치기 일쑤였다. 신발은 타이어가 그려진 타이어 표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하얀 고무신은 주로 어르신들이 신고 다니시었던 것이다. 당시 도로는 진흙길이라 아이들은 때를 많이 묻히고 험하게 신어서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전쟁 후 미국 등 우방국으로부터 지원받아서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다. 원조받은 옥수수가루나 우유도 분말로 된 우유를 지급 받을 때도 있었고, 딱딱한 덩어리 우유를 학교에서 지급받던 시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던 시절이라 학교급식으로 옥수수 빵 덩어리를 지급받으면서 ‘국민학교’를 다닌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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