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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기사내용

월남치마와 몸빼바지

by -한우물 2009. 8. 15.

 

월남치마와 몸빼바지

6.25전쟁을 거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개획이 발표되어 산업화로 이끄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에 따라서 새로운 산업이 생기게 되었다. 60년대 후반에는 월남파병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의 생활 풍속도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군인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라디오를 통하여 매일 들었다. 파월부대인 맹호부대가를 애국가 만큼이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몸빼 바지와 월남치마가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열풍처럼 번졌다. 월남치마는 일상복으로 허리부분에 고무줄을 넣은 긴 통치마이다. 몸빼바지는 어머니들의 작업복 대신으로 논이나 밭에서 일할 때 주로 입었다.

월남치마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월남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월남치마를 사가지고 국내에 반입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월남에는 월남치마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족에게 주는 선물로 사오다 보니 월남치마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어느 주장이 맞건 간에 월남전 기간 중 우리나라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선풍적인 돌풍이 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일터인 밭이나 들로 일하러 나가실 때 입던 몸빼바지를 일상복으로도 입고 다니셨다.

그 시절에는 외출복과 일복의 구분이 없던 시절이었다. 60년대에는 대부분의 옷들이 허리에 고무줄을 넣어서 입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고무줄이 끊어지면 구멍가게에 가서 고무줄을 사왔다. 가늘고 길게 늘어진 국수가락같은 검정 고무줄을 팔았는데, 노란색 원형으로 된 고무줄은 고급이었다. 고무줄을 옷핀으로 묵어서 끼워나가면 고무줄 월남치마나 몸빼바지는 재생되어 다 떨어지도록 입을 수 있었다. 60~70년대에는 모든 물자가 귀해서 떨어지거나 헤어진 옷들은 어머니가 손바느질로 꿰매 서 입던 시절이다. 하물며 양말이 떨어져 발가락이 나오면 늦은 밤 어머니가 돋보기를 쓰시고 꿰매주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요즘에야 개성 있게 옷을 구입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기 쉽고 벗기 쉬운 월남치마를 입고서 들에 일하는 아버지나 삼촌들의 간식인 물 칼국수를 머리에 이고서 논길로 다니시던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남의 옷을 빌려 입기라도 하여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월남치마나 몸빼바지가 엉덩이에 걸치기 일쑤여서 연신 허리춤으로 올리는 수고로움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고무줄이었기에 아주 큰 사이즈를 입지 않으면 잘 맞는 옷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리만큼 원색적이고 요란했던 기억이 나지만 아줌마의 옷으로 대표적인 옷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월남치마는 변화는 되었지만 얇고 가벼워 하늘하늘 날리는 느낌의 쉬폰원피스로 올해 유행이 되고, 몸빼바지도 밖에서 일하는 아낙네는 물론 남자들도 입는 옷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노원신문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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