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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의 일상

여행길에서 만난 풍수원성당

by -한우물 2014. 4. 9.

 

 

 

 

 

 

 

풍수원성당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명의 신자들이

팔일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풍수원에서 80여년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 이 신부님을 맞이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케 되었다.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내다가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대주교께서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불란서 르메르(Le Merre)이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등 12개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

(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그런데 본 성당은 지난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바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되어 매년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6.25동란으로 3년간 본 행사가 치뤄지지 못했다.)

신앙의 요람터요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되어 풍수원은 참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풍수원성당 홈페이지 소개글

 

지난 3월31일 서울에서 강원도로 출발하면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고속도로를피해 국도로 여행하면서 들러본 풍수원 성당 소제지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1097번지이다. 여행중 도로변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접근성은 아주 좋은곳이었다. 내가 어렸을적 기억은 초가집이나 스레이트 작은집이 전부였는데 풍수원 성당을 들르면서 100여년전에 이렇게 대형 건물을 축조할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벽돌을 신자들이 직접구워서 120평이라는 당시의 대형 건물을 3년여에 걸쳐서 완공하였다니 지금 보아도 훌륭한 건축 양식이라는 생각에 여행하면서 잠시 들러보면 당시 초가집으로 촌락을 이루고있었을 풍경을 마음속에 그리고 보면 더욱 실감나는 현장임을 알수있다. 내가 태어났던 시골집이 지금 생각해보면 30여평 되었을것 같은데 6.25전쟁중에 북한군이 군단사령부로 사용하였다고하니 이 건물은 얼마나 큰 건물인지를 실감할수 있다. 전쟁의 아픈 세월의 상처를 격으면서도 이렇게 잘 보존되어 한편의 그림같은 역사를 내가 볼수있다는 사실에 감동적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지말고 오래전의 세월인 과거의 그림을 생각 하면서 풍수원 성당을 감상하면 보는 사람의마다 다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