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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의 생활의 발견

천덕꾸러기 사전 이야기

by -한우물 2008. 4. 20.

가을은 책 읽기 좋은, 독서를 장려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핑계로 책을 접하지 않는다는 통계를 가끔 듣는다.

활자로 된 책들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가 우리생활 깊숙이 들어와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박인동선생님은 평생을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

발령장을 받을 때마다 시골 학교을 찾아 이사를 다니셨는데, 그때마다 이삿짐의 대부분인 책들을 끌어안고 다니셨다. 가족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소중하게 지식을 담아 주어야하는 직업이기에 책들과 일상을 같이하신 것이다.

 

몇 년전 교장으로 정년을 마치시면서 짐을 정리하셨는데, 그동안 애써서 모아둔 수많은 책들을 그냥 고물상에 팔아버리기에는 안타까우셨다. 그래서 그동안 근무했던 시골학교에 그 책들을 모두 기증하기로 마음먹고 학교 몇 군데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모두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부피가 커서 보관하기 성가신데다가,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40여년 교편생활이 참으로 허망하셨을텐데결국 모교 서고에다 작은 용달차 두대 분량을 보내주었다 한다.

 

글을 읽고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사전(辭典)인데, 책 중에서도 특히 사전은 더욱더 천대받고 있다. 학창시절, 국어사전을 사면 남몰래 흥미를 품었던 낱말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이제는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글씨도 작고 재미도 없으면서 무겁기만 책이 되어 책꽂이 장식용으로도 자리보존이 어렵게 되었다. 그중 유일하게 영어 열풍을 타고서 영어사전만이 가장 커다란 호사를 누리는 것 같다.  

 

사전(事典)은 우리가 모르는 낱말 풀이뿐만 아니라 특정분야의 전문용어까지 응용, 역사, 어원, 그림, 사용법, 예문을 서술하면서 설명해 세상의 많은 지혜들을 풀어준다. 사전을 가지는 것은 세상의 여러 이치에 대해서 수시로 설명해 주고 지식을 넓혀 주는 훌륭한 선생님을 곁에 두고 있는 셈이 된다.

예전에는 사전을 살 돈이 없어서 서로 돌려 보다보니 책갈피에 까맣게 때가 뭍어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단어의 내용을 알았을 때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편하고 쉬운 컴퓨터나 전자사전으로 대신하고 있다. 마치 패스트푸드에 비만이 된 것처럼 입으로만 빠른 아이들을 보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너무 쉽게 터득하면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책장을 하나씩 넘겨가면서 찾아보는 노력이 있을 때 전자사전이나 인터넷 검색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기에 젊은 학생들은 책장을 넘기어가면서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노원신문 413호

http://nowon.newsk.com